강릉비석군에서 마주한 늦가을 돌의 고요한 기록
늦은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강릉 죽헌동에 있는 강릉비석군을 찾았습니다. 마을과 주택가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넓은 터가 나타납니다. 작은 언덕 위로 비석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고, 그 배경으로 낮은 산등성이가 부드럽게 이어졌습니다.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 돌비석의 표면에 붙은 낙엽이 천천히 흔들렸습니다. 차분한 빛이 돌 표면의 글자를 비추자, 오래된 기록들이 다시 숨을 쉬는 듯했습니다. 처음 보는 공간이었지만 묘하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조용하고, 그 속에 시간이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이곳이 단순한 비석의 집합이 아니라, 한 지역의 기억이 응축된 자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 주택가 사이로 이어지는 진입로
강릉비석군은 시내 중심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로 접근성이 좋습니다. 내비게이션에 ‘강릉비석군’을 입력하면 죽헌동 마을길로 안내되는데, 초입은 주택과 상점이 섞여 있어 조금 복잡합니다. 하지만 마을회관을 지나면 곧 ‘비석군 안내판’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가면 작은 비포장길이 이어집니다. 주차장은 따로 없지만 도로 옆 공터에 잠시 세워 둘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대중교통 이용도 어렵지 않습니다. 입구 쪽에는 낮은 돌담과 나무로 된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골목길을 걸으며 들려오는 생활 소음이 점차 멀어지고, 돌비석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의 문턱을 넘는 듯했습니다.
2. 질서 속의 고요한 풍경
비석군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비석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 서 있으며, 각 비석마다 모양과 크기가 달랐습니다. 일부는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이끼가 덮여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비춰 글자의 음각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주변에는 잔잔한 잔디가 깔려 있고, 낮은 울타리가 공간을 감싸고 있습니다. 관리 상태가 정돈되어 있어 걷는 발걸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종소리가 들려서 주변에 풍경이 매달려 있는 듯했습니다. 비석들의 배치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내며 마치 돌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정적이 있었습니다.
3. 강릉비석군의 역사적 의미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강릉 지역의 인물과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각 비석에는 관리, 학자, 의병 등 다양한 인물들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부 비문은 풍화로 인해 읽기 어려웠지만, 안내판을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시습의 유허비’와 ‘강릉부사 공덕비’는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단순히 돌로 세운 기념물이 아니라, 지역의 정신과 기억을 담은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큽니다. 가까이 다가서면 새겨진 한자 글씨의 획마다 정성과 존경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오래된 문체 속에 강릉 사람들의 자부심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4. 세심한 관리와 조용한 머무름
비석군 주변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낙엽이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리되는 듯했고, 비석마다 작은 안내 표식이 달려 있었습니다. 울타리 주변에는 나무 벤치 두 개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쉴 수 있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면 비석들의 높낮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작은 파동처럼 보입니다. 별도의 매표소나 상점은 없지만, 바로 옆 마을 주민들이 길 안내를 친절하게 해주었습니다. 공간 전체가 조용하여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낮아지고, 바람소리와 새소리만이 배경을 채웁니다. 인공적인 조명 대신 자연광에 의존하고 있어 해 질 무렵에는 빛이 금세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마저도 이곳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보기 좋은 인근 코스
비석군을 둘러본 뒤에는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죽헌서원터’를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서원의 기단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 자리에 서면 옛 교육 공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강릉단오문화관’이 있어 지역의 전통문화를 살펴보기 좋습니다. 오후에는 ‘경포호’로 이동해 호숫가 산책을 즐기거나, 인근 ‘강문해변’에서 해 질 녘의 노을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길이 평탄해 이동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관람 후에는 죽헌동 근처의 작은 카페 거리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느끼기에도 좋습니다. 한나절 일정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완성됩니다.
6. 방문 시 유의할 점과 팁
강릉비석군은 별도의 관람 시간 제한이 없지만, 오후 늦게는 주변 조명이 부족하므로 해 지기 전 방문이 좋습니다. 비석 사이의 바닥이 약간 울퉁불퉁해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비석에 손을 대거나 기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돌이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름철에는 그늘이 적으니 모자나 물을 챙기면 좋습니다. 주변이 주택가와 맞닿아 있으므로 소음을 줄이고 조용히 관람해야 합니다. 이곳을 천천히 걸으며 돌의 표면을 관찰하다 보면, 세월이 만든 질감과 손끝의 차가운 감촉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잠시 머물면 이 도시의 오래된 숨결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마무리
강릉비석군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쌓인 공간이었습니다.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이름과 문장이 이 지역의 역사를 말없이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오후에 방문하니 그 고요함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인위적인 장식이 없고, 오직 자연과 돌의 질감만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시 온다면 봄철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새싹이 비석 사이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공간이었습니다. 강릉의 숨은 역사와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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